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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식당 연대기 2017-06-05

여성중앙 | 추천 0 | 조회 156

가족 식당 연대기

봄꽃 눈부셔도 사람보다 아름답겠는가. 사람이 같이 밥을 먹는 것이 화목이고 평화다. 5월에는 열일 제쳐두고 가족 간에 같이 밥을 먹자.

1925년, 서울에 등장한 최초의 경양식 레스토랑, 서울역그릴.
1925년, 서울에 등장한 최초의 경양식 레스토랑, 서울역그릴.

1925년, 서울에 등장한 최초의 경양식 레스토랑, 서울역그릴.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역작 『안나 카레니나』(연진희 옮김, 민음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8부작 대하소설의 전체를 단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 첫 문장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묘사를 통해 19세기 말 제정 러시아 귀족 사회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당시 가족 간의 갈등, 부부간의 애증, 형제간의 시기·질투와 비교하면 요즘 방영되는 ‘미드’나 막장 드라마의 긴장감 넘치는 가족 관계는 그냥 귀여운 수준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부는 물론 부모와 자식 간의 다툼, 형제간의 골육상쟁은 신화, 문학 그리고 오페라에서 가장 빈번히 다루어지는 주제였다. 인간은 그러한가 보다. 우리 역사에서도 아버지가 제 자식을 뒤주에 가두어 죽인 사례가 있다.

당시 무도회장을 방불케 하며 화려함을 자랑했던 서울역그릴 내부. 높은 천장과 넓은 면적은 서양식 레스토랑의 위엄을 보여주었다.
당시 무도회장을 방불케 하며 화려함을 자랑했던 서울역그릴 내부. 높은 천장과 넓은 면적은 서양식 레스토랑의 위엄을 보여주었다.

당시 무도회장을 방불케 하며 화려함을 자랑했던 서울역그릴 내부. 높은 천장과 넓은 면적은 서양식 레스토랑의 위엄을 보여주었다.
서울 창덕궁 안에서 불과 200여 년 전 일어난 사건이다. 가족의 불화는 때로 돌이키지 못할 상황으로 치닫을 때가 있어 남보다 더 어렵다. 그러니 가족 간에는 그 누구보다 더 예의를 갖추어야 하며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그게 가족이다. 한편 최근 새롭게 등장한 가족도 있다. 현재 우리 사회의 25% 이상을 차지하는 1인 가구다. ‘혼밥’ ‘혼술’이라는 단어는 곧 국어사전에도 등재될 기세다.

골목마다 보이던 패밀리 마트도 언제부터인가 간판을 바꿨다. 우후죽순 생기던 미국식 패밀리 레스토랑도 잘 보이지 않는다. 세상의, 세태의 거대한 변화의 흐름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내 젊은 시절, 가족이 함께 다녔던 식당을 더듬어보며 유년기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그릴’이라는, 아주 남다른 이름을 가진 식당들이 있었다. 불고기집은 아니고 양식을 파는 식당이었다.

칼은 오른손, 음식을 집는 포크는 왼손. 이게 미국식 밥 먹는 예절이다. 그릴에만 가면 어머니는 안절부절 어쩔 줄 몰랐다. 칼은 오른손, 포크는 왼손! ‘나이프 논쟁’은 온 집안 대소사의 강력한 세력가였던 어머니가 패퇴하여 뒤로 물러선 유일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나는 나이프도 오른손, 포크도 오른손, 내 편한 대로 쓰게 됐다.

1939년에 처음 문을 연 한일관. 한국전쟁 전, 소고기 살코기를 이용한 불고기를 처음 선보였고, 환갑잔치, 상견례 등 집안 대소사를 위한 명소로 자리 잡았다.
1939년에 처음 문을 연 한일관. 한국전쟁 전, 소고기 살코기를 이용한 불고기를 처음 선보였고, 환갑잔치, 상견례 등 집안 대소사를 위한 명소로 자리 잡았다.

1939년에 처음 문을 연 한일관. 한국전쟁 전, 소고기 살코기를 이용한 불고기를 처음 선보였고, 환갑잔치, 상견례 등 집안 대소사를 위한 명소로 자리 잡았다.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그릴은 단연 ‘서울역그릴’이었다. 롯데호텔, 신라호텔도 없던 시절, 르네상스 양식의 서울역 2층 양식당은 그 위엄이 대단했다. 추억이니까 아름다운 게 아니라, 우리나라의 어느 호텔이나 유명 리조트의 레스토랑에서도 과거 서울역 레스토랑처럼 위엄 있는 식당은 보지 못했다.

홀은 본격 무도회를 개최해도 될 만큼 넓고 천장이 높았는데 언제나 한산했다. 나는 이 권위 있던 서양 레스토랑의 메뉴를 아직도 기억한다. ‘함박스테이크, 돈까스, 카레라이스, 오므라이스’에 와인도 있었다. ‘애플 파라다이스’와 ‘마주앙’. 둘 다 경상북도 경산에서 생산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의 기억이 맞다면 대구에는 ‘대원그릴’이 있었는데, ‘징기스칸’(당시는 ‘샤부샤부’라고 하지 않았다)으로 유명했다. 왜 레스토랑을 그릴(grill)이라 이름했을까. 미국에서 온 말이 아니라 일본에서 수입된 단어라서 그랬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19세기 말부터 서양 음식을 내는 ‘그릴’이 도쿄에도 교토에도 있었는데, 그들은 ‘구리루(グリル)’로 쓰고 있었다.

1970년대 용산역 맞은편에서 시작한 역전회관은 바싹불고기로 유명세를 타면서 오랫동안 이름을 알렸다.
1970년대 용산역 맞은편에서 시작한 역전회관은 바싹불고기로 유명세를 타면서 오랫동안 이름을 알렸다.

1970년대 용산역 맞은편에서 시작한 역전회관은 바싹불고기로 유명세를 타면서 오랫동안 이름을 알렸다.
그릴 시대 이후, 1970년대 개발 연대기에는 전국적으로 무슨 ‘회관’이란 이름의 식당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마포로 이사했지만 용산역 앞에는 오랜 ‘역전회관’이 있었다. 몇 년 전 전주한옥마을을 찾았을 때 동네 토박이더러 비빔밥집을 추천해달라 했더니, ‘가족회관’을 댔다. 아직도 회관이 있단 말인가.

구태의연한 옥호에 상상할 수 없는 출입구를 보고 기대를 접었는데, 음식은 놀라우리만큼 정갈했다. 쇠락한 모습이 역력한 전주 구도심에서 놀라운 ‘반가 음식’을 만났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딱 한 편의 작품만 볼 시간이 내게 주어진다면, 나는 영화를 포기하고 얼른 ‘가족회관’을 택하겠다.

본격적인 컬러텔레비전 시대가 열린 1980년대에는 가족 나들이에 제격인 대형 식당이 대거 출현했는데, 이름하여 ‘가든’이다. 불고기와 갈비 일색의 메뉴로 구성된 ‘가든’은 서울 근교, 부산, 대구 등 전국에 넘쳐났다.

아직도 중소 도시와 시골에는 ‘가든’을 붙인 식당들이 보이는데, 당시에는 단연 서울 강남의 ‘삼원가든’이었다. 장식용 물레방아를 아직 돌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신사동 그 자리에서 같은 메뉴로 여전히 성시 중이다. 가든 이후에는 뷔페 식당이 나왔고, 미국식 패밀리 레스토랑이 등장했으며 ‘마이카’족이 생겨나면서 호사가들은 맛집 정보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1976년에 문을 연 삼원가든은 갈비와 불고기를 대표 메뉴로 하고, 물이 흐르는 자연 경관을 조성해 야외에서 식사를 즐기는 문화를 선도하기도 했다.
1976년에 문을 연 삼원가든은 갈비와 불고기를 대표 메뉴로 하고, 물이 흐르는 자연 경관을 조성해 야외에서 식사를 즐기는 문화를 선도하기도 했다.

1976년에 문을 연 삼원가든은 갈비와 불고기를 대표 메뉴로 하고, 물이 흐르는 자연 경관을 조성해 야외에서 식사를 즐기는 문화를 선도하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 누군가 내게 가족과 함께 갈 식당을 추천해달라면, 서울의 ‘한일관’을 들겠다. 한일관은 역사와 명성을 갖고 있지만, 대형 음식점임에도 불구하고 식재료와 음식 맛의 수준을 높이 지키고 있다. 무엇보다 가족이 함께 가기 편한 이유는 전형적인 ‘식당’이기 때문이다. 술이 주가 되어 있는 주객전도 식당이 아니고, 트렌디하지도 않아 편하다.

전통적인 서울 식당이라 칭해도 되겠다. 고인이 된 소설가 최인호는 월간 『샘터』에 에세이 ‘가족’을 35년간이나 매달 연재했다. 이 소설가와 한 시대를 거쳐온 많은 사람은, 작가의 아들과 딸, 아내의 이름을 알고 홀어머니의 고군분투 인생에 익숙하다.

소설 『별들의 고향』 한 편으로 자고 일어나니 국민 스타가 되어버린 작가 최인호. 어느 재수 좋은 날, 두둑한 첫 원고료를 받은 젊은 작가는 젊은 아내와 함께 명동을 걸었다.

그리고 아내는 그에게 “여보, 우리 한일관에 가서 불고기 먹어요”라고 했다. 그때가 1970년대 후반 서울의 늦은 가을날이었다고 한다. 당시 불고기는 최고급 메뉴였고, 한일관은 가족이 함께 외식하고 싶은 선망의 식당이었다는 이야기.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이때 가화(家和)에 쓰인 화(和)는 벼(禾)와 입(口)을 합친 문자다. 그러니 밥을 함께 먹는 것이 바로 화목, 화평이란 뜻이다. 밥을 함께 먹으면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

가족은 함께 밥을 먹어야 하고, 독신자도 마찬가지다. 벽을 보거나 창밖을 바라보며 혼자 밥을 먹지 마시라. 봄꽃 눈부셔도 사람보다 아름답겠는가. 사람이 같이 밥을 먹는 것이 화목이고 평화다. 그래야 일이 이루어진다. 5월에는 열일 제쳐두고 가족 간에 같이 밥을 먹자. 식구(食口)는 세상살이의 출발이다.

에디터_조한별 | 글_김민식
여성중앙 2017.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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