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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니없이 대치동에서 진짜 식당을 만나다 2017-07-05

여성중앙 | 추천 0 | 조회 221

터무니없이 대치동에서 진짜 식당을 만나다

서울 대치동은 원래 경기도 광주에 속했다. 한강이 범람하는 상습 침수 지역으로, 맛집이 생기기에는 일천한 곳이었다고 할까.

카페 이탈리아노는 사장님이 커피 배달도 한다.
카페 이탈리아노는 사장님이 커피 배달도 한다.

카페 이탈리아노는 사장님이 커피 배달도 한다.
글쓴이 김민식은…

내촌목공소 고문이자 나무를 주제로 한 강연 ‘김민식의 나무이야기’ 진행자. 젊은 시절부터 원목과 목재를 고르기 위해 세계를 누비던 그는 세계적 레스토랑을 찾아다닌 이력 역시 길다.

사람의 손가락마다 고유한 지문(指紋)이 있듯, 땅에도 지문(地文)이 있다. 이것이 터무니, 즉 터의 무늬다. 터무니 있다, 없다 할 때의 그 터무니. 건축가 승효상은 『지문(地文)』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내면서 이 ‘터무늬’를 얘기한 일이 있다. 그는 우리 시대 개발과 건축의 터무니없는 모습을 통렬히 지적했다. 안타깝게도 건축과 문화, 역사의 현장에도 터무니가 없는 일이 다반사다. 도무지 터무니없는 세상이다.

이런 와중에 서울 강남 끝자락 대치동에서 ‘터무니 있는’ 식당들을 발견했다. 그 식당들이 특별히 더 반가운 것은 강남구 대치동에 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 동네의 아파트 단지는 강남 재건축으로 부동산 뉴스의 머리를 장식하곤 했다. 이 일대를 개발한 종합 건설업체는 군사 정권 시절 대한민국 역사상 정경 유착에 관한 부패 스캔들로 온 나라를 부글부글 끓게 만들기도 했다.

목공소에서는 예기치 않은 사고가 가끔 발생한다. 그중 가장 힘든 때는 사람이 다치는 경우다. 작년에 젊은 목수 하나가 건축 현장에서 발목을 삐었다. 통증은 심했지만 정형외과에 갈 정도는 아니라 한의원을 찾았다. 대치동에 있는 한의원이었는데, 신통하게도 침 한 번에 부기가 빠지고 통증이 가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막내 목수가 똑같이 발을 삐었다. 같은 한의원을 갔는데, 또 신통력이 나왔다.

이 정도면 편작 아닌가? 그래서 나도 갔다. 편작 선생님이 내게는 ‘신의 침’을 감추셨는지, 별로 듣지 않았다. 그래서 몇 번을 반복해 침을 맞으러 갔다. 그렇게 침을 맞으러 한의원을 오가다가 우연히 한의원이 있는 은마아파트 상가 건물에서 뜬금없게도 몇 식당을 만났다. 재건축을 앞둔 강남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 안의 상가 2층에 있는 식당에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냥 여기서 한 끼 넘기자’는 생각으로 한 식당에 들어갔다.

일조룡의 짬뽕은 적당히 맑은 국물이 예술이다.
일조룡의 짬뽕은 적당히 맑은 국물이 예술이다.

일조룡의 짬뽕은 적당히 맑은 국물이 예술이다.
첫 식당은 ‘일조룡’. 중국집이다. 식당 안은 후줄근하고 식자재도 그리 훌륭해 보이지 않았다. 음식은? 동급의 중국집 중 최고였다. 동교동의 ‘진진’, 서래마을 ‘황제’를 가보고 하는 소리냐고 물으면 곤란하다. 그것은 공정하지 않다. 서울에 있든 강원도, 제주도에 있든 메뉴판에 표시된 가격대가 비슷한 식당끼리 비교해야 공정하다.

일조룡은 배달을 겸하는 동네 중국집이다. 웍의 열기가 고스란히 음식에 남아 있고, 접시에 성의가 그득했다. 형제 부부가 식당을 운영하는데, 형은 주방 일을 하고 동생은 배달을 책임지는 것 같았다.

팁을 주자면, 오늘의 식사나 세트 메뉴보다는 짜장면, 짬뽕, 탕수육을 주문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이 집의 열기와 성의를 그대로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허술해 보이는 중국집에서 굴짬뽕을 먹고 나니, 이 아파트 상가가 다시 보였다.

은마 아파트 상가 B동에 있는 은마동 한식.
은마 아파트 상가 B동에 있는 은마동 한식.

은마 아파트 상가 B동에 있는 은마동 한식.
한의원을 다니면서 한식집 두 곳을 더 발견했다. ‘은마동한식’과 ‘고향집’이다. 두 집 모두 상호가 잘 보이지 않는다. 메뉴만 커다랗게 밖에 붙여두었다. 한 집은 생삼겹, 보쌈, 생굴 요리, 또 한 집은 낙지, 주꾸미, 동태탕을 걸고 있다.

두 집 모두 그때그때 만든 요리를 내고 있었는데, 먹어 보고 아주 만족했다. 얼마나 음식 장사에 열심인지 음식에 정성과 열정이 가득해 맛이 더 있어지는, 위대한 식당들이다.

카페 이탈리아노의 에스프레소.
카페 이탈리아노의 에스프레소.

카페 이탈리아노의 에스프레소.
상가 복도에 음식 냄새가 이리저리 폴폴 날리는데, 자그마한 커피숍 하나가 있다. 세상에나, 에스프레소 한 잔에 2000원이다. 이탈리아의 정통 에스프레소와 가격이 비슷하다. (한국은 커피 한 잔 값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축이다. 보통의 이탈리아 카페 가격보다 두세 배가 높다.)

싼 커피 값에 반한 게 아니라, 그 주인에게 반했다. 커피를 내리는 모습이 유리 벽 밖에서 보이는데, 여간 멋쟁이가 아니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그는 수염을 가지런히 길러 잘 다듬었고, 늘 모자를 쓰고 있다. 커피를 마시며 몇 마디 나눴다. 경기 일산에서 카페를 했는데, 부인이 일터를 대치동으로 옮겨 본인도 따라왔다고 했다.

상가의 커피숍이 밀라노, 피렌체의 아취에 조금도 덜하지 않다. 이제 한의원에 갈 때마다 에스프레소 더블로 두 잔 시킨다. “그거 미국 독립군들이 쓰던 모자 같네요?” “이건 벨기에 광부 모자예요.” “지난번 그 모자는?” “아, 그건 토스카나고요.” 아니나 다를까. 주인 바리스타 아저씨는 피렌체에서 패션 MD를 하며 20년을 살았단다.

서울에 와서 비 추적추적 내리는 날, 에스프레소 한 잔에 앉고 싶은 장소다. 오늘은 일부러 들렀더니 그동안 없던 간판이 작게 붙어 있었다. 빨갛게, ‘Cafe Italiano’. 제대로 멋 부릴 줄 아는 주인은 이탈리아 커피 문화를 고스란히 가져오려는 욕심을 갖고 있었다.

할매재첩국의 덮밥 정식.
할매재첩국의 덮밥 정식.

할매재첩국의 덮밥 정식.
터무니없게도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 상가 2층에서 아름다운 식당을 셋이나, 거기에 멋진 바리스타 아저씨의 에스프레소까지 발견했다. 즐거운 대치동이다. 대치동 길거리 간판이 다시 보였다. 자주 지나치는 길, 포스코 빌딩으로 가는 길 오른편의 ‘할매재첩국’. ‘1950년 구포에서, 부산의 명품’이라고 써 있었다.

대치동 상가 식당에서 받은 감동을 그대로 안고 들어갔다. 식당 전면에 쓰인 ‘구포할매재첩국’이 맞다면, 내가 아는 집이다. 요즘 부산의 전통 향토 음식으로 돼지국밥, 밀면, 복국 등을 꼽으나 과거에는 단연 재첩국이었다.

바다와 민물이 합쳐지는 낙동강 하구는 재첩으로 유명했다. 부산 토박이에게 이른 아침 “재첩국 사려”를 외치던 행상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짙은 향수다. 장작불 때고 가마솥 밥을 지으며 쓰러질 듯한 ‘구포할매집’을 나는 20대에 처음 갔고, 십여 년 전에 일부러 찾았더니 새로 지은 건물만 덩그러니. 옛 풍취는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대치동의 재첩국이 부산의 1950년 할매집과 상관이 있든 없든, 상차림이 추억의 그 집보다 훨씬 나았다. 보통은 현재의 맛집이 추억의 맛집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이런 관점에서, 대치동의 재첩국 집이 나아 보인 것은 절대 흔한 경우가 아니다.

대치동의 재첩국 상은 훌륭한 백반 상이다. 전통 경상도 상차림에서 볼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하고 깔끔하다. 전통 부산 밥집이 강남에 와서 진화한 것이 분명하다.

터 무늬 없는 이 구역의 허름한 식당에서 이름 없이 일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가족이 합심해 오손도손, 열과 성을 다해 밥을 짓고, 팔고 있었다. 내가 발견한 식당의 공통점은 노부부가, 형제가 주방과 홀을 지키고 지극한 성의로 식당을 운영한다는 것. 맛이 대수인가. 식당에서 ‘진짜 사람’을 봤는데! ‘터 무늬’도 이제 생길 것이다. 이렇게 나는 터무니없이 대치동에서 아름다운 식당을 만났다.

에디터_김은정 | 사진_양성모
여성중앙 2017.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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