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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식당들 2017-07-31

여성중앙 | 추천 0 | 조회 1071

길 위의 식당들

44번 국도, 설악로 위에는 격을 지닌 강원도 시골 식당들이 있다. 동서고속도로가 개통되었으니 이 국도의 쓸모는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44번 국도 위 나의 단골 식당들은 어찌 되려나.

44번 국도와 56번 국도가 교차하는 길목, 주유소 옆 신내기사식당.
44번 국도와 56번 국도가 교차하는 길목, 주유소 옆 신내기사식당.

44번 국도와 56번 국도가 교차하는 길목, 주유소 옆 신내기사식당.
길이 있었다. 길은 아름다우며 많은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중국 신문학의 아버지 루쉰은 “길은 원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걸어가니 길이 되었다”라고 했다. 산길, 둘레길, 신작로, 고속도로까지. 사람이 길을 만들었다.

내가 늘 다니는 길이 있다. 이제 곧 아련해질지 모를 길, 그래서 안타까움이 자리하는 44번 국도다. 설악로라고도 부른다. 며칠 전 서울과 양양을 잇는 동서고속도로가 개통되었으니 이 44번 국도의 위상은 이제 달라질 것이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44번 국도는 국토의 최전방 원통, 인제로 가는 길이고 양평, 홍천을 거쳐 백담사, 한계령 넘어 속초 가는 나들이 길이기도 하다. 십수 년 전 겨울, 강원도에 소문난 젊은 목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서운 추위를 뚫고 내촌목공소를 찾아 나섰을 때도 이 길을 달렸었다.

북적거리던 오전 시간이 지나고 한산해진 신내기사식당 내부.
북적거리던 오전 시간이 지나고 한산해진 신내기사식당 내부.

북적거리던 오전 시간이 지나고 한산해진 신내기사식당 내부.
그동안 44번 국도는 미국 캘리포니아 불버드(Boulevard) 못잖은 폭의 도로로 바뀌더니 이내 고속도로가 겹쳐 생겼다. 바로 경춘고속도로, 출입구는 동홍천이다. 그래서 전처럼 양평은 거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이 고속도로가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한다며 동해안 양양까지 서둘러 뚫린 것이다.

고속도로 나들목도 마을 지척에 개통되었다. 국도변 막국수집, 삼거리 기사식당, 자주 가던 청국장집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새 길이 뚫리거나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옛길에 있는 주유소와 휴게소가 황량하게 남은 모습을 흔치 않게 봐왔던 터다.

동서고속도로 개통으로 동해안 가는 길이 몇 킬로미터, 몇 분 단축되었다며 매스컴에서는 연이어 보도를 했다. 이 도로 개통으로 ‘연간 물류비 1조원 절감’, 이런 뉴스들도 나온다. 길은 영리하게도 세월 따라 빨라진다.

영변막국수집 대표 메뉴인 물막국수.
영변막국수집 대표 메뉴인 물막국수.

영변막국수집 대표 메뉴인 물막국수.
수십 년 이 국도에 연해 있던 상점, 식당, 휴게소, 주유소들이 있다. 대를 물리며 살아온 사람들도 있다. 동해안 길 삼십 분 단축, 물류비 절감으로 이제 옛길이 될 길. 길 위의 식당들은 어떻게 될까. 이들의 삶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허기를 채워주던 온기 나는 식당들, 국도 44번의 식당들에 보내는 나의 오마주다.

국도 44번을 따라 경기도 양평을 지나 강원도에 들어서면 바로 홍천이다.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가 시작되는 곳에 홍천 IC가 있다. 홍천(洪川)은 그 이름만큼이나 행정 구역상의 면적도 넓다. 서에서 동으로 국도, 지방도, 산길까지 두루 거치다 보면 자동차로 한 시간 삼십 분여는 족히 걸린다. 새색시 첫 나들이 가듯 운전하는 나 같은 사람은, 같은 거리인데 두 시간으로도 부족하다.

홍천에 들어서면 군부대가 곳곳에 앉아 있고 젊은 군인들이 부쩍 보이니 전방 경계 지역이라는 것이 바로 실감난다. 홍천읍에는 맛집 담당 취재 기자들이 한때 그렇게 추천하던 두부찌개집이 있는데, 간판은 그대로지만 주인이 바뀐 지 오래다.

식당 앞에서 포즈를 취한 주인 할머니.
식당 앞에서 포즈를 취한 주인 할머니.

식당 앞에서 포즈를 취한 주인 할머니.
손님이 전혀 들 것 같지 않은데 문을 열어두고 있는 가게, 장사를 한 흔적만 남겨둔 채 창문에는 지울 수 없는 먼지가 덕지덕지 내려앉은 집도 있다. 서울 동쪽 경계에서 불과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강원도 군 소재지의 읍내 풍경이다.

여기에서 오랫동안 위태롭게 자리를 지키더니 요즈음 다른 메뉴 개발로 활기를 찾은 막국수집이 있다. 강원도에서 막국수 간판으로 가장 오랜 집이니, 아마 우리나라 통틀어서도 그러할 것이다. 바로 ‘영변막국수’. 김소월의 시 “영변에 약산 진달래 꽃” 구절에 나오는 그 평안도 영변이 이 막국수집의 옥호다. 평안도 영변에서 내려온 실향민과 지금 주인의 아버님이 1962년 막국수집을 함께 시작한 데서 유래한다.

처음엔 홍천읍내 오일장터의 실비집이었다고 한다. 나는 이 집 삼대를 알고 있다. 막국수집을 연 할아버지와 할머니, 뒤를 이은 아드님 내외, 군대 갔다 온 손자까지. 나의 친구들과 내촌목공소를 찾는 많은 이가 이곳의 메밀국수와 두부 열무김치로 요기를 했다. 나도 냉면과 막국수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 단순하고 중립적이며 무덤덤한 맛이 좋아서다.

장남보리밥 전경. 바깥채는 식당으로, 안채는 살림집으로 사용한다.
장남보리밥 전경. 바깥채는 식당으로, 안채는 살림집으로 사용한다.

장남보리밥 전경. 바깥채는 식당으로, 안채는 살림집으로 사용한다.
강원도에 사니 산 넘어 막국수집 순례에 나설 때가 많다. 간간이 강원도를 찾은 손님들 역시 막국수 맛을 보고 가려고 나를 앞장세우곤 한다. 여기저기 찾아다니기는 해도 이름난 맛객처럼 “이 집이다”라고 내세우지를 못했다. 강원도에 있는 막국수집들에서 ‘격’과 ‘아취’를 아직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식당이 가지고 있는 ‘매무새’와 ‘태도’ 말이다.

식당 평가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보면, 어디에서든 맛으로만 음식점의 등급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맛집에서 맛은 오히려 최소한의 조건에 불과하다. 음식이 정직한가, 식당 주인의 인식, 종업원의 태도 등을 살핀다.

그런데 우리는 적당히 불결해도, 종업원의 응대가 불량해도 ‘맛’이 있으면 그냥 ‘맛집’이라고 곧잘 말하곤 한다. 심지어 맛집은 좀 더럽고 어수선해야 한다고 태연히 말하는 사람도 있다. 강원도 막국수뿐 아니라 유명 맛집으로 전국에 알려진 식당과 음식이 아직도 한국 전쟁 후의 부산 국제시장 언저리 문화를 가지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식당을 나서다 마주친 기사식당의 단골들.
식당을 나서다 마주친 기사식당의 단골들.

식당을 나서다 마주친 기사식당의 단골들.
그런데 ‘영변막국수’는 격과 아취 모두를 갖추고 있는 드문 집이다. 대물린 주인 가족의 변함없는 자세, 정직하고 꾸밈없는 맛, 메뉴에 얽힌 이야기까지 두루 갖췄다. 그리고 내부는 청결하다. 주문을 받으면 안주인이 메밀가루로 반죽을 시작한다.

막국수보다 더 덤덤한 성정을 가진 주인 내외는 최근에야 ‘닭갈비’를 새 메뉴에 올렸다. 홍천읍에 활기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고 이 집도 손님이 뜸했는데, 닭갈비를 추가한 후 눈에 띄게 손님들로 활발해졌다. 춘천 닭갈비의 원조는 홍천이다. 홍천의 메뉴가 강원도청 소재지 춘천으로 건너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단다. 홍천 토박이인 영변막국수 주인이 들려준 이야기다. 이제 영변막국수는 강원도에서 닭갈비를 하는 식당 중 최고의 막국수가 나오는 집이 되었다.

영변막국수에서 44번 국도를 따라 인제 방향으로 십 분 정도 달려가면 화촌면. ‘신내기사식당’이 나온다. 돼지볶음, 김치찌개, 된장찌개를 내는 식당이다. 안주인은 식당을 운영하고 바깥양반은 배추, 고추 농사를 짓는다.

영변막국수 식당의 정갈한 내부.
영변막국수 식당의 정갈한 내부.

영변막국수 식당의 정갈한 내부.
강원도 내륙 지역과 타지를 오가는 화물차 기사들이 많이 이용하는데, 메뉴는 그냥 집밥이다. 구석구석을 얼마나 깔끔하게 관리하는지, 식당을 운영하는 분들은 강원도의 이 기사식당을 참고할 만하다. 먹고 나면 속이 편한 가정식 백반집이다.

신내기사식당에서 나와 계속 인제 방향으로 가면 ‘내촌’ 표지판도 나온다. 철정삼거리, 육군의 철정병원 근처에서 ‘시골청국장’집을 찾을 수 있다. 청국장을 즐기는 식도락가들은 꼭 한번 들러볼 만한 집이다. 황해도 출신의 할머니 혼자서 식당을 지키며 초라하게 남아 있지만 ‘산촌의 멋’이 고스란히 엿보인다.

서쪽으로 44번을 따라 계속 달려 홍천 끝자락에 닿으면 ‘장남보리밥’이 나온다. 보리밥, 쌈, 된장으로 구성된 백반이 주메뉴이고 감자전과 막국수도 있다. 채식주의자에게는 다시없는 식당으로 된장, 고추장도 직접 담근다. 강원도 산골 식당이라고 모두 자기들이 직접 담근 장을 쓰는 것은 아니기에, 입맛 예민한 내촌목공소의 목수들이 무척 좋아하는 식당이다.

안채 마당 한가운데 가지런히 놓인 장독들.
안채 마당 한가운데 가지런히 놓인 장독들.

안채 마당 한가운데 가지런히 놓인 장독들.

홍천을 지나 인제로 들어서면 38선 그리고 소양감댐, 빙어마을이 나온다. 빙어마을 입구에 자리한 ‘대흥식당’은 댐을 끼고 붕어찜, 민물 매운탕을 전문으로 하는 집이다. 질경이밥도 있다. 질경이는 땅에 바싹 붙어 자라는 아주 끈질긴 풀이다.

우리 집 앞마당에 지겹게 붙어 있어 그렇게 밟고 다니지만 움쩍하지 않는다. 산에 들에 흔한 질경이가 해독 작용이 뛰어나다며 이제 나물로, 또 질경이밥으로 등장했다. 강원도 오지에서 이렇게 ‘매무새’ 있는 밥상을 만날 수 있다니! 소양강댐을 뒤로 두고 있는 아름다운 식당이다.

우리 마을에 새로 난 동서고속도로의 나들목. 이 고속도로를 두고, 내가 계속 국도를 이용하여 서울-양평-홍천-인제를 다니게 될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특별히 읍내에 일이 있거나 군청에 가야 할 때만 국도 44번을 이용할 것이다.

손님들 오는 소리에 낮잠 자던 개가 깨어났다.
손님들 오는 소리에 낮잠 자던 개가 깨어났다.

손님들 오는 소리에 낮잠 자던 개가 깨어났다.
얼마 전 청국장을 사러 ‘시골청국장’에 들렀다. 한적한 오후, 외출하려는 할머니에게 “노년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식당을 계속하셔야 된다”고 권했더니 “며칠 있으면 여기 고속도로 개통한다며. 길 나면 이삼 년 지켜보다가 나도 관둬야지” 하신다. “안 된다”고 하니, 할머니는 손사래 치며 할아버지가 있는 요양소로 나선다. 길을 따라 만난 식당과 추억의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44번 국도 위에서.
44번 국도 위에서.

44번 국도 위에서.
글쓴이 김민식은…

내촌목공소 고문이자 나무를 주제로 한 강연 ‘김민식의 나무이야기’ 진행자. 젊은 시절부터 원목과 목재를 고르기 위해 세계를 누비던 그는 세계적 레스토랑을 찾아다닌 이력 역시 길다.

INFORMATION

영변막국수
위치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공작산로 3 문의 033-434-3592

신내기사식당
위치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구룡령로 10 문의 033-435-2374

시골청국장
위치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한계길 37 문의 033-435-9118

장남보리밥
위치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장남길 34 문의 033-435-2206

대흥식당
위치
강원도 인제군 남면 빙어마을길 28 문의 033-461-2599

에디터_안지선 | 사진_윤상명 | 어시스턴트_김다솜
여성중앙 2017.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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