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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소년 입맛 2017-09-27

여성중앙 | 추천 1 | 조회 67

하루키의 소년 입맛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주인공이 먹고 마시는 음식은 10대 중반이나 초등학생 입맛을 넘지 않는다. 그의 글에 점철된 이 미성숙한 입맛 때문에, 세계 최고 베스트셀러 작가의 문학성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하루키의 작품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음식에 대한 그의 기호를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책에는 음식에 대한 묘사가 빠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하루키가 내 부엌으로 걸어 들어왔다』라는 책까지 출판되었을까.

‘부엌에서 하루키를 읽는 모임’에서 하루키의 책 속에 등장하는 음식, 등장인물들이 함께 먹는 요리에 대해 펴낸 책이다. 대단한 문화 팬덤이다. 하루키 신드롬은 그가 데뷔한 몇 해 뒤부터 줄곧 그를 따라다녔다. 작가의 아카이브에는 작품 속의 음식 목록도 정리되어 있으니 놀라운 일이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2013)의 마르게리타, 『노르웨이의 숲』(1987)에는 송이버섯, 오믈렛, 달걀말이, 스키야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9)의 프라이드 포테이토, 콘비프 샌드위치, 『댄스 댄스 댄스』(1988)의 햄 파스타, 거의 이런 음식들이 올망졸망하게 등장한다. 스트라스보르그의 소시지 조림, 새우 채소 볶음, 양상추와 훈제 연어 샌드위치 등 하루키의 소설 속에 언급된 음식 목록만으로 이 페이지를 다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술을 마시지도, 크로켓을 먹지도 않았는데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부터는 맥주를 마시고 크로켓도 먹기 시작했다는 한 작가의 고백의 글을 읽었다. 어떤 이는 음식에 대한 하루키의 묘사가 구체적이고 유려하며 소설 속에 언급된 와인 리스트를 읽고는 탄복을 했다고도 한다. 이러니 ‘하루키를 부엌에서 읽는 모임’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할 리 없다. 하루키는 그들의 아이돌인 것이다.

하루키의 소설 속 주인공이 먹고 마시는 음식은 10대 중반이나 초등학생 입맛을 넘지 않는다. 30여 년간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입맛이 한결같으니 일관성 있다고 해야 할까. 하루키 글에 점철된 이 미성숙한 입맛 때문에, 세계 최고 베스트셀러 작가의 문학성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19세기 프랑스의 법률가 브리야 사바랭의 ‘미식 예찬’에는 이런 말이 있다. “당신이 먹은 것이 무엇인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하루키는 어떤 인물인가?

내가 하루키를 처음 읽게 된 것은 소설 『노르웨이의 숲』 때문이다. 제목에 나무 이름, 목재, 숲, 목조 건축에 대한 글귀가 보이면 나는 앞뒤 보지 않고 덥석 책을 사고는 한다(나중에 국내 출판사가 ‘상실의 시대’로 제목을 바꿨던데, 그랬다면 나는 이 소설을 만나지 못했을지 모른다).

책의 첫 장을 읽으며 『노르웨이의 숲』이 비틀스의 ‘Norweigian Wood’라는 것을 알았다. 이후 하루키의 소설과 여행기 등 얼추 예닐곱 권을 읽었고 그와 관련한 기사나 서평이 게재되면 놓치지 않고 읽었다. 내게도 그는 흥미 있는 유형의 인물임에 분명하다.

일본 교토 출생의 하루키는 고베에서 성장하여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그리고 도쿄의 와세다 대학 문학부에서 연극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중 결혼을 했고, 이 학생 부부는 7년간 재즈 카페를 운영한다. 하루키는 카페에서 직접 주방일도 했다. 그러니 소설 속 음식의 레시피가 생생하다.

하루키가 ‘고베’에서 성장했다는 것에서 나는 작가의 많은 것을 읽는다. 1950~60년대 하루키의 초등 그리고 중고등학교 시절, 세계에서 가장 큰 항만 도시가 고베였다. 고베는 나가사키, 요코하마와 더불어 일본에서 가장 먼저 개항한 지역이기도 하다. 외국 영사관뿐 아니라 일본에서 가장 활발한 국제도시.

오늘날 고베는 이웃 도시 부산, 상하이, 카오슝, 싱가포르 항의 부상으로 1960년대의 번창함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고베 도심은 여전히 일본 어느 도시보다도 다양한 서양식 레스토랑이 즐비하고 재즈 바가 많다. 늦은 밤 고베의 재즈 바에 가면 70, 80대는 되었을 법한 어르신들이 바의 앞자리를 온통 차지하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일본 재즈 바의 연세 지긋한 단골손님들이 몹시 부러웠다.

고베 출신 하루키에게 재즈 카페는 아주 익숙한 문화였을 것이다. 음식도 그러하다. 고베 구도심 언덕길 그리고 골목길에는 프렌치, 이탤리언 등 서양식 음식 가게가 일본 우동, 소바, 라멘 집보다 많다. 이에 더하여 날렵한 현대 건축을 보면 마치 서양 각국의 조계지 같다. 언덕은 가팔라 샌프란시스코 같은 느낌도 든다.

하루키의 소설에 묘사된 샌드위치, 오믈렛, 양상추, 피자, 햄 파스타는 십대 고베 소년이 가졌던 음식들이다. 하루키는 고등학교 시절에 재즈, 짐 모리슨의 로큰롤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1960년대 음악이다. 음식은 다를까.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의 글 속 음식은 60년대 고베다.

그 시대에도 도쿄 출신은 ‘스시’를, 오사카 출신은 적어도 ‘다코야키’, 후쿠오카 출신이면 ‘하카다 라멘’을 언급하지 않았을 리 없다. 하루키의 음식과 음악은 고스란히 그 시절의 고베, 가장 국제화된 일본 항구 도시에 머물던 소년의 감성을 담고 있다.

하루키를 자폐적 성향의 인물로 분석하는 심리학자도 있다. 마라톤을 완주하며, 친구가 없고,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는다. 그런 성향 때문인지 그의 입맛과 소설 속 음식은 변하지 않고 10대 중반을 고수한다. 일종의 ‘미성숙’의 성향으로 판타지 가득한 스토리들이 쉼 없이 나오는 것은 아닌지.

일생을 통해 하루키가 애정을 쏟은 음식은 다름 아닌 샌드위치다. 하루키 소설의 레시피를 좇는 열혈 팬들과 하루키에게 추천하고 싶은 식당이 있다면 바로 ‘서브웨이’. 한국의 서브웨이도 그렇지만 일본 서브웨이는 롱 브레드와 샐러드가 일품이다.

이 미국 체인 브랜드에서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보시라. 신기하게도 서브웨이 메뉴에는 하루키의 요리가 다 있다. 햄, 로스트비프, 양상추, 미트볼…. 그의 레시피가 온통 미국식의 가벼운 음식이니 서브웨이의 메뉴판과 흡사한 것은 당연하다.

하루키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근사하게 음식을 먹을 만한 장소는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데미 그라스’가 제격이다. 전형적 일본풍 경양식집이다. 분위기도 음식도 오너 셰프도 따뜻하여 하루키의 주인공들이 여기서 식사를 했다면 절대로 ‘죽거나 소리 없이 사라지지’ 않았을 터다. 데미 그라스 키친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새우를 튀기고 햄버그스테이크를 담는 주인은 일본에서 양식 요리 공부를 했다.

하루키의 에세이에 ‘밭에서 갓 따온 파를 넣은 우동의 맛’이란 대목이 나온 것을 보고서야 나는 30년 하루키 독서 여정 중 처음으로 소설가와 맛의 접점을 찾았다. 소년 입맛의 하루키가 ‘파’ 맛을? 우동과 파 맛을 언급했으니, 하루키의 입맛에도 비로소 조금의 신뢰가 생겼다고 할까.

곧 노벨 문학상을 받을 기세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직 한국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의 최신작 『기사단장 죽이기』(2017)가 광화문 대형 서점 신간 판매대를 점령해버린 풍경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쓴다.

피터 팬이나 가질 법한 입맛과 취향을 여태 가지고 있는 소설가에게 경양식집 ‘데미 그라스’는 다소 깊은 맛이 아닐까 우려도 된다. 아무래도 ‘서브웨이’의 햄, 미트볼, 양상추가 하루키와 그의 소설 속 주인공에게는 가장 어울리지 싶다.

소설가의 입맛에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맛이 변하면 그의 이야기도 바뀔 것이고, 그러면 나는 하루키의 독자로 계속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글쓴이 김민식은…

내촌목공소 고문이자 나무를 주제로 한 강연 ‘김민식의 나무이야기’ 진행자. 젊은 시절부터 원목과 목재를 고르기 위해 세계를 누비던 그는 세계적 레스토랑을 찾아다닌 이력 역시 길다.

에디터_안지선
여성중앙 2017.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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