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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식당은 어디에 2018-01-18

여성중앙 | 추천 0 | 조회 571

인사동 식당 ‘꽃 밥에 피다’의 비빔밥.

지면에 푸드 에세이를 쓰는 인연으로 ‘한국의 럭셔리 투어-먹고 입고 자기’에 관한 강의 요청을 받았다. 한국관광공사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호텔, 식음료, 국내 여행사 등 관광업계와 함께하는 행사였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한국에서의 럭셔리 투어를 물어보았다. 강의를 위해 럭셔리에 관한 지인들의 집단 지성을 SNS로 빌렸던 것이다. 아름지기의 함양한옥, 온지음에서 식사, 진관사 공양 투어, 한옥 호텔과 궁중 요리, 유학파 오너 셰프의 레스토랑, 남해의 사우스케이프…. 이런 먹거리와 공간들이 답으로 왔다.

럭셔리(luxury)란 무엇인가 럭셔리는 라틴어 빛(lux), 지나침(luxus)에서 유래한 단어다. ‘일용할 양식’이 하나님의 축복이던 고대 그리고 중세, 럭셔리는 부정적 의미에 더 가까웠다. 반면에 아사시의 ‘가난한’ 수도자 프란치스코는 로마 가톨릭과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으로까지 공경받았다.?

기독교 정신과 봉건 질곡의 시대를 거치고 럭셔리를 긍정적으로 해석한 사람은 18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흄(David Hume)이었다. 왕실과 귀족, 영주의 럭셔리 소비는 많은 직인, 농노, 상인의 삶을 개선한다. 그의 명저 『Essays on Moral, Political and Literary』(도덕과 정치, 문헌에 대하여; 아직 한국 번역본은 나오지 않았다)에는 럭셔리 소비의 경제적 미덕이 무려 삼사십 페이지에 걸쳐 언급되어 있다. 음지에서 나온 럭셔리를 역사에 활보하게 만든 자들은 영국의 자유주의 철학자였다.

그럼에도 ‘럭셔리’라는 주제의 강의를 의뢰받은 필자는 ‘럭셔리’라는 단어에 여전히 호감이 없었다. 럭셔리는 어쩐지 백화점 세일과 부동산 홍보에만 사용되는 단어라는 나의 편견이었을 것이다. 럭셔리 푸드, 럭셔리 레스토랑은 무엇일까 음식과 건축, 장소, 분위기와 역사성, 주인과 직원들의 태도?

럭셔리의 어원 룩스(lux)가 나온 이탈리아의 밀라노. 라 스칼라 오페라 하우스 입구 옆으로 레스토랑 ‘일 마르케시노(Il Marchesino)’가 있다. 두오모 성당과 근처 아케이드를 관광하다 지치면 잠시 목을 축이기 좋은 위치다. 이곳에 가서 이 식당을 놓치면 안 된다. 식사 시간이 아니면 커피 한 잔이라도 좋다. 음식, 실내의 조명과 가구, 응대하는 매니저의 태도! 옆의 라 스칼라 극장에 바로 입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면에는 두오모 광장이 있다. 세계의 오페라 하우스와 콘서트홀 중에서 밀라노 라 스칼라의 일 마르케시노처럼 격조를 갖춘 레스토랑을 본 적이 없다. 미슐랭 별 3개 등급의 레스토랑도 이만한 장소, 역사성까지 갖추진 못했다(미슐랭은 음식만으로 식당의 등급을 결정하지, 건축이나 문화, 장소까지는 판단하지 않는다).?

독일 뮌헨의 미술관 ‘피나코테크’에는 알테, 노이에, 모던 3개의 관이 있는데 노이에(Neue/New) 지하에 있는 간이식당의 타이 푸드와 음료도 놓치면 안 된다.? 미술관 반지하, 참으로 옹색한 위치의 간이식당에서 만나는 충실한 음식. 독일은 태국 음식점이 유달리 많은 나라다. 세잔과 고갱, 반 고흐를 방금 만났던 관람자가 웬만한 먹거리에 감동할 리 없는데도, 이 미술관 간이식당의 타이 커리는 범상치가 않다. 캐주얼 식당의 스낵이 ‘품위’를 갖춘 격이다.

암스테르담의 ‘헤보우 레스토랑’. ⓒ Ronald Knapp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로얄 콘세르트 헤보우’ 입구의 레스토랑도 빼놓을 수 없다. 헤보우는 실내 건축 음향의 완벽함으로 소문난 음악당이다. 19세기 말의 건축임에도 콘서트홀에 입장하는 사람의 동선까지 고려했다. 1층의 작은 레스토랑은 항상 좌석이 부족하고 왁자지껄하며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콘서트홀 헤보우의 레스토랑은 인근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도 한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음악과 건축 그리고 레스토랑까지 방문자를 조금도 억누르지 않는 콘서트홀이다.

뉴욕의 ‘더 블루 박스 카페’. ⓒTiffany&Co.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에 최근 ‘더 블루 박스 카페(The Blue Box Cafe)’가 오픈했다. 이곳을 럭셔리 레스토랑의 으뜸이라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더 블루 박스’는 티파니(Tiffany)의 푸른색 포장 박스에서 따왔다. 실내 벽 색깔도 온통 옅은 티파니 블루다. 티파니의 뉴욕 플래그십 숍 건물 4층에 있는 레스토랑, 오드리 헵번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재현했다. 더 블루 박스 카페는 영화 속 주인공이 된 양 아침을 먹을 수 있는 곳. 크루아상과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가격에 놀랐는데 우리나라 스타벅스보다 쌌고 서울 카페 대부분의 메뉴판에 쓰여 있는 가격의 얼추 반값이다(뉴욕을 여행하는 분은 꼭 들러보면 좋겠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라 스칼라의 마르케시노, 노이에 피나코테크의 지하 식당, 콘세르트 헤보우 레스토랑, 티파니의 더 블루 박스 카페는 기품 있는 곳이다. 엄격한 관리와 일관성이 눈에 들어오며 음식과 그릇, 가구 하나에도 디테일이 보인다.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과 경험은 과연 음식일까 화려한 내부 장식, 아니면 일관된 디테일일까 이들 레스토랑과 카페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진정성 있는 태도’라는 것이 나의 오랜 관찰의 결과다. 이게 바로 럭셔리다.

진정성이 럭셔리를 만든다. 요즈음 누구도 세계의 톱클래스 레스토랑을 ‘미식’만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현지(local), 채집(wild), 제철 식품 (seasonal)이 우리 시대 미식의 화두다. 셰프가 키운 채소, 과일 요리를 내는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에는 진정성 있는 자세와 정직한 먹거리가 화제다. 손맛은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덴마크와 스웨덴의 레스토랑과 캐나다의 황량한 노바 스코셔 작은 포구의 채집 요리 식당이 세계 최고의 럭셔리 식당으로 등극한 것은 불과 십여 년 안팎의 일이다. 맛이 아니다. 정직한 현지 제철 재료로 만든 음식이 테이블에 오른다. 전통적 미식의 나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을 제치고 덴마크, 스웨덴, 캐나다가 주목받다니. 미식 트렌드도 포스트모던인가 싶다.

한식당 ‘꽃 밥에 피다’

이제 ‘글로벌 스탠더드’의 시선으로 우리 식단과 레스토랑을 살펴보자.

서울 인사동 골목 안쪽에 ‘꽃 밥에 피다’라는 작은 친환경 식당이 있다. 칭찬을 아낄 수 없는 젊은 한식집이다. 보도를 보니 미슐랭이 2018년 서울의 빕 구르망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미슐랭의 눈이 밝다.

한국 최고의 등급을 주고 싶은 식당은 제주도에 있다. 구제주시 국수 거리에 있는 ‘자매국수’. 일본의 명문 라멘, 우동, 소바 집을 잘 아는 분들은 “그게 뭘”이라 할 수 있으나, 이 국수집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총총한 걸음걸이, 태도 역시 감동적이다. 국수와 삶은 돼지고기(돔베고기)도 나무랄 구석이 없고.

지난해 팔월 ‘국도 45번 길 위의 식당들’에서 소개했던 강원 홍천의 ‘영변막국수’와 ‘신내기사식당’도 일류다. 영변막국수는 강원도에서 연조가 가장 오래된 막국수집이다. 막국수나 냉면으로 이름난 강원도 식당은 하나같이 공장 같거나 음식을 ‘먹이는’ 집 같다. 이 식당에서는 닭갈비와 막국수를 즐길 수 있다. 감추어진 럭셔리 막국수집이다. 강원도 산길에 있는 기사 식당, ‘신내기사식당’을 가면 ‘어디에서 이런 가정식을’ 하는 찬사가 나온다. 이 집의 배추, 무, 고추 등 푸성귀는 주인이 직접 경작한 밭에서 나온다. 이런 식당을 만나거나 찾아내기란 강원도 첩첩산중에서도 쉬운 일이 아니다.

2017년부터 서울에서도 많은 고급 식당이 미슐랭에 선정되고 있다. 이들을 럭셔리로 분류할까 사실 미슐랭의 별로 선정된 세계의 레스토랑이 모두 럭셔리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그중에서도 미슐랭 별 셋은 “요리가 매우 훌륭하여 맛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식당”이라는데, 나는 그리 편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 미슐랭 식당 대부분이 위트와 유머가 없어서이다. 절도 있고 디테일이 넘쳐나며 음식도 훌륭하지만, 이상하게도 대부분의 미슐랭 선정 식당은 명성 때문인지 경직되어 있다. 식사 자리는 편안해야 하는데 넉넉하고 푸근하지 않는 레스토랑을 럭셔리로 부를 수는 없다. 코펜하겐의 노마(스칸디나비안), LA, 뉴욕, 밀라노, 도쿄의 노부(스시)는 현재 세계 럭셔리 중 럭셔리로 평가받는 레스토랑이다. 미슐랭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내오는 접시의 디테일과 절도는 지나치게 선명하여 음식에 나이프나 젓가락을 올리다가 멈칫할 정도다. 내부 조명, 가구, 인테리어 어디 하나 흠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쿨하고 에지가 있다. 그럼에도 럭셔리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따뜻하지 않아서이다. 미슐랭은 철저히 음식의 질만으로 평가한다. 레스토랑의 역사성(이야기)과 공간성(건축과 환경)이 배제되어 있다. 미슐랭 인스펙터는 오랜 스킨십을 가지며 주인과 셰프의 태도까지 살피지 않는다.

그래도 서울 몇몇 레스토랑에는 언제 누구와도 함께할 만한 단품 메뉴가 있다. 청미심의 평양냉면, 한우리의 국수전골, 호무랑의 스시 점심 세트다. 점심시간마다 전쟁터인 양 막 나오는 냉면, 전골, 여느 일식집의 세트와 비교하면 아주 단정하여 서울의 대표 럭셔리 메뉴로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레스토랑의 평판은 ‘정직한 식자재’와 ‘주인의 진정성 있는 태도’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정직해야 럭셔리 레스토랑이다. 2018년 새해 이 글을 읽는 모든 분과 함께 정직한 럭셔리를 추구하는 레스토랑, 카페를 찾고 싶다. 평창동계올림픽을 맞아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을 위하여 정부에서도 럭셔리 식당 찾기에 나섰다고 한다. 나도 이제 럭셔리라는 말을 편하게 써볼까 한다.

글쓴이 김민식은…

내촌목공소 고문이자 나무를 주제로 한 강연 ‘김민식의 나무이야기’ 진행자.

젊은 시절부터 원목과 목재를 고르기 위해 세계를 누비던 그는 세계적 레스토랑을 찾아다닌 이력 역시 길다.

Editor:안지선

Writer:김민식

Photographer:윤상명

Design:이솔지

출처:여성중앙 201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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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 있고 디테일이 넘쳐나며 음식도 훌륭하지만, 이상하게도 미슐랭 선정 식당은 명성 때문인지 경직되어 있다. 편안해야 할 식사 자리, 넉넉하고 푸근하지 않은 레스토랑을 럭셔리로 부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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